Shin Sung-Hy : 부활의 회화

Shin Sung-Hy : 부활의 회화

Introduction


누아주(Nouage)의 창시자, 신성희 – 부활의 회화
2023.06.22 - 2023.08.31

        

더 갤러리 개관기념전은 기존 회화의 관념에서 벗어나 회화적 혁신과 차별성을 보여주는 누아주(Nouage)의 창시자, 신성희 (1948 ~ 2009) 작가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와 정신을 소개하는  “신성희 – 부활의 회화”를 기획하게 되었다.


신성희 작가는 프랑스 파리에서 왕성한 작업으로 전 세계 화단을 놀라게 한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지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내며 세계 최초로 “누아주”라는 장르를 개척하였으며, 각 시대에 따라 콜라주, 박음, 엮기와 같은 테크닉의 변천 과정을 관통하고 있다. 


평면 캔퍼스에 만들어 낸 공간속에 작가의 숨결을 불어넣어 회화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것처럼 이번 전시를 통하여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창조성 그리고 그 안에서 상상, 그 이상을 꿈꾸고 이루어냈던 작가의 예술성을 만나 보기 바란다.


k-art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을 더 갤러리는 누구나 좋은 작품들을 쉽게 접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미술을 대표하는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예술 생태계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 갈 것이며, 문화 예술의 가치를 미술 애호가들과 함께 공유하는 전시 프로그램들을 펼쳐 나갈 것이다.


이번 전시에 귀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해 주신 정이녹 여사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작품에 생명력을 더해 나갔던 작가의 열정이 부활의 기쁨처럼 활짝 피어나 더 갤러리를 찾아주신 미술 애호가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힘과 열정들로 가득 채워지시길  바란다.



2023. 6. 22




Shin Sung-Hy, the Founder of Nouage – Painting of Rebirth 

        

THE GALLERY’s exhibition to celebrate its opening titled Shin Sung-Hy – Painting of Rebirth was curated to introduce the unique compositional language and spirit of the late Shin Sung-Hy(1948 ~ 2009), the founder of Nouage, which demonstrates painterly innovation and differentiation from conventional notions of painting.


Shin created a unique and intelligent body of work that has stunned the international art scene with his flourishing work in Paris, France, pioneering the genre of “Nouage” for the first time in the world. His oeuvre penetrates a trajectory of transformation of techniques such as collage, stitching and weaving throughout each age.


This exhibition will introduce the new possibilities and creativity of painting and the artistry of Shin who dreamed beyond and fulfilled his imagination as he breathed life into his paintings by creating a space on a flat canvas.


THE GALLERY eager to inspire the K-art scene will create opportunities for everyone to easily access excellent pieces of artworks, and build a stronger art ecosystem with works by iconic and talented artists. I will also carry out exhibition programs that share the value of culture and art with art afficionados. 

I would like to express my deepest gratitude to Madam Inock Jeang, the wife of Shin Sung-Hy for offering his valuable works for this exhibition.


I hope that the passion of Shin Sung Hy who brought vitality to his work could bloom like the joy of rebirth to empower and delight all the visitors to THE GALLERY.



June 22, 2023



평론의 글

빛과 부활의 시그널, 신성희의 ‘누아주’ 회화


“색채의 대가! 화면의 연주자! 힘차고도 명상적이며 열정적이면서 주의 깊고 다이나믹 하면서도 세심하고 조직적이면서도 직관적인 그는 작렬하는 색상, 강한 색상으로 탐색하며 질감으로 밀도 있게 쌓이면서 허공을 엮는다.”(Gilbert Lascault)

한 화가가 자신의 언어를 갖추는 데 평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신성희(1948-2009)는 2천 년대까지 평면에 대한 문제 의식을 품고 작업을 해오다 그 심화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프랑스의 평론가 질베르 라스코가 전성기의 작품을 보고 환호를 보낸 것은 그에 대한 화답이리라. 금욕적인 스타일이 대세이던 국내 화단에서도 그의 작품은 파격 자체였으나, 그의 회화 스타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움츠려 들기보다는 크리센도처럼 더 우렁차게 화면을 수놓았다.

이러한 성격은 채색된 판지를 찢어서 붙인 콜라쥬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색채로 직조 된 화면은 질료가 아니라 빛으로 치환된 매개물이란 점에 전문가들은 주목하였다. 오광수는 “현란한 색채의 향연은 계시 적인 빛의 홍수”와 같은 인상을 준다면서 “빛으로의 환원은 물질로서의 색채를 정신적인 계시의 체험”(1985)으로 전이된다고 하였고, 고(故) 이 일은 “허황된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모두 삶에 대한 뜨거운 갈망의 세계”(1988)를 표상하고 있다고 하였다.

콜라쥬 작업 이후에 나온 ‘누아주’(nouage)는 그의 예술이 절정에 달했을 때 등장하였다. ‘누아주’란 ‘엮다’, ‘잇다’란 뜻을 지닌 ‘누에’(nouer)에서 비롯된 프랑스어로 신성희의 작품을 일컬을 때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다. 마리 뷜또는 작가를 “붓과 가위의 특이한 리듬으로 장단을 맞추는 현대의 기사(騎士)”라고 불렀는데 바로 누아주 작업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누아주’ 연작은 천에다 각종 색을 입힌 다음 페인팅 한 천을 찢고 그것을 그물망처럼 화면에 엮어가는 과정을 거치는데 화면 전체를 이음으로 채우기도 하고 일부는 빈 공간으로 남겨두기도 하며 방사형으로 시각적 진동을 퍼지게 하는 공간 구성을 취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눈 여겨 볼 부분은 찢어진 천을 ‘엮거나 잇는’ 대목이다.

 

“나의 작업들은 찢어지기 위해 그려진다. 그리고 찢는다는 것은 이 시대의 예술에 대한 질문이며 그것이 접히고 묶여지는 것은 곧 나의 답변이다. -- 묶여진다는 것은 결합이다. 너와 나, 물질과 정신, 긍정과 부정, 변증의 대립을 통합하는 시각적 언어이다.”(2001)

 

작가는 천을 찢고 묶는 행위를 ‘대립을 통합하는 상징’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왜 작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실험’이라는 관용어를 놓아두고 철학적인 용어를 동원했을까. 이것은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가 언급 했듯이 다른 사람들이 그저 소음을 들을 뿐인 곳에서 어떤 사람은 음악을 듣는 것과 유사하다. 그는 ‘누아주’가 더 큰 의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잘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아주의 전형적인 작품 <공간별곡>은 ‘찢음’과 ‘이음’에 의해 완성되었다. 여기서 ‘찢음’은 단순한 천을 찢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속에 맥이 닿아있다. ‘찢음’은 세상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세상의 방법은 채우고 쌓고 과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찢음’은 버리고 낮추며 순종하는 의미에 가깝다. 예수님의 죽음은 세상의 본 모습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왕국의 속성도 드러냈다.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희생을 받아들인 까닭에 우리를 옭아매던 죽음의 덫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이 단계는 ‘이음’으로 연결되는데 만일 ‘찢음’만 있고 ‘이음’이 없었다면 죽음만 있고 부활은 없는 상태와 같았으리라. 부활은 하나님이 죄와 사망을 멸하시고 자신의 창조세계를 그리스도로 인해 회복하실 것을 예고한다. 이는 인간이 망가뜨린 상한 세계가 하나님이 지으신 선한 창조세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소망을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이처럼 우리가 그의 작품이 지닌 의미를 찾아내려면 그의 작품 모자이크에 자리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심오한 패턴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대상을 꿰뚫어볼 수 있는 ‘믿음이라는 안경’이 필요할 것이다.

그의 화면에는 유난히 많은 색깔들이 기용된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높은 순도의 색상과 눈부신 효과는 화면 가득히 채워진 페인트된 천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작가는 이렇게 찬란한 색깔을 사용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가 색깔을 선호하게 된 것은 ‘형이상학적 빛’과 연결되어 있다. 넓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밝고 화사한 색채를 좋아했던 인상파화가들의 밝음 또한 이 빛과 상관이 없다. 앞에서 그가 기독교신앙을 추상적인 조형언어로 구체화시켰다고 했듯이 그의 색깔 또한 보이지 않는 빛의 조명을 형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색채가 내뿜는 빛은 하늘로부터 받은 은총의 선물이었다. 그것은 이성 혹은 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단순한 자연현상과 구별되며 그의 모든 작품이 색으로 계시된 빛의 세계를 증언하고 있다. 이 꺼질 줄 모르는 빛이 그의 작품에 놀라운 마술적 성격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 그에게 평면 회화는 일종의 일루전(幻影)의 세계, 그러니까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을 이식 시키는 부단한 추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3차원은 여전히 2차원에 자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누아주 작품에서는 실물처럼 그림자의 형체를 갖고 공간속에 건재하다. 작가가 “우리도 저 사물들과 생명체처럼 그림자를 만들자”고 말한 것은 일루전에서 실체로의 귀환이요 회복을 의미한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캔버스에 생명을 주는 일이 가능해졌으며 그 일은 그림자를 동반한 실재물이 됨으로써 실현되었다. 이것을 기독교 적으로 해석하면 진리를 알지 못하던 존재가 그리스도의 ‘찢음’과 ‘이음’을 통해 새 존재가 되었음을 말한다.

그의 작품에는 빛이 있고 소망이 있다. 죽음을 이기고 나온 생명의 메시지가 작품 안에 번뜩인다. 예기치 못한 사실을 만났을 때의 놀라움과 반전, 이것이 그의 작업에 큰 원동력이 되어 작품 세계를 견인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지만 화면을 그물망처럼 엮어가면서 만들어내는 조밀한 짜임 관계와 여러 천들이 합쳐지면서 생성되는 조형적인 즐거움을 덤으로 선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저절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누아주는 캔버스를 찢어서 꼬고 묶는 고난이도의 작업 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이 수법을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작업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 그리고 그것을 통한 의미의 획득이 없었다면 손에 피멍이 들 정도로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수고를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금번 신성희의 작품전을 기획한 ‘더 갤러리’가 개관의 준비를 마치고 막을 올린다. 우리는 ‘이미지’, ‘음악’, ‘이야기’에 둘러싸인 상상력이 동원되는 상징적 세계(imaginative symbolic world)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의식 형성은 이런 문화적 요소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는 일은 생각하기 힘들다. 어쩌면 우리는 문화적 위세에 점점 많은 시간을 노출하고 거기에 휘둘리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고후 10:5) 하듯이 문화적, 예술적 영역까지도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양질의 예술을 권장하고 번영시킴으로써 ‘좋은 삶’과 ‘좋은 사회’의 비전을 공유하는 일은 우리에게 맡겨진 의무이자 과제인 셈이다. 모쪼록 기대와 축복 속에 탄생한 ‘더 갤러리’가 훌륭한 문화를 배양하는 ‘예술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며, 이 글을 ‘더 갤러리’ 개관전을 축하하는 글로 가름하고자 한다.


서성록(안동대 명예교수)



Shin Sung Hy’s Painting of “Nouage”:

Sigs of Light and Rebirth  


A master of color! A performer on canvas! Vigorous yet meditative, passionate yet careful, dynamic yet meticulous, organized yet intuitive, he navigates with blazing colors, and strong colors, and weaves through the void as he builds densely with texture.
- Gilbert Lascault


It is said that it takes a painter a lifetime to develop his own artistic language. Shin Sung Hy(1948-2009) had worked on his flat painting up until the 2000 with a critical mind, and came up with works as the result of hard work. French critic Gilbert Lascault applauding his work was a response to his oeuvre in his heydays. His work was a radical departure from the austere style of domestic painting back then, but his style of painting grew more like a crescendo than a diminution over time.

This is evident in his collage work, which is made of torn and glued colored cardboard. Experts in the field noted that the woven canvas of colors is not a material, but a medium that has been replaced by light. Oh Gwangsu said, “the dazzling feast of colors gives the impression of a revelatory flood of light” and “the reduction to light transfers color as a material into a spiritual experience of revelation”(1985), while the late Lee Il said that the work represents “not a world of hallow fantasies, but a world in which we all have an intense longing for life”(1988).

Nouage came around at the peaks of his career after his collage work. The word “nouage” is a French term derived from the word “nouer”, which means “to weave” or “to join”, and is often used to describe Shin’s work. Maributto called him, “a modern-day knight playing along with the unusual rhythm of brush and scissors”.

In the Nouage series, he paints various colors on cloth, then tears the painted cloth and weaves it onto the canvas like a net, sometimes filling the entire canvas with seams, sometimes leaving it empty, and sometimes creating a spatial composition that spreads visual vibrations radially, but it is the “weaving or joining” of the torn cloth that is noteworthy.

“My works are painted to be torn. To tear is to raise a question on art in this age, and to fold and bind is my answer. -- To be tied is to be joined. It is a visual language that unites the opposites of you and me, matter and spirit, affirmation and negation, and dialectic." (2001)

Shin considered the act of tearing and tying the cloth as a “symbol of unifying opposites”. Why did he abandon the idiom of “experimentation” often used by artists in favor of philosophical terms? As Michael Polanyi noted, some people hear music where others just hear noise. Shin understood that “Nouage” was entering a larger domain of meaning.

His quintessential work of Nouage titled Peinture Spatiale was completed by “tearing” and “joining”. Here, “tearing” does not refer to a simple tearing of the fabric. It refers to the love and redemption of Christ, who sacrificed himself for humanity. The tearing moves in the opposite direction of the world. The world’s way is to fill, pile, and show off. But for him, “tearing” is more about abandoning, humbling, and obeying. Jesus’ death revealed not only the world as it is, but also the attributes of God and his kingdom. Jesus' death was not a failure, but an acceptance of sacrifice so that we can be released from the death trap that holds us captive. This step leads to a “joining”, for if there was only “tearing” and no “joining”, there would be only death and no rebirth. Rebirth or resurrection foreshadows God’s destruction of sin and death, and the restoration of his creation in Christ. It can be interpreted as an expression of the hope that the broken world of humanity will be restored to its original state as the good creation of God. Thus, if we want to find a meaning of his work, we need to find the profound pattern of “Christ’s death and resurrection” in the mosaic of his work. To understand it properly, we will need the “glasses of faith” to see through the object.

His paintings feature an unusually large number of colors. The colors of high purity and the dazzling effect in his paintings come from the painted cloth that fills the canvas. The question arises as to why he used such brilliant colors. His preference for color is linked to a “metaphysical light”. It has nothing to do with the light coming in through the large windows. Nor does it have anything to do with the brightness of the Impressionists, who loved bright, vivid colors. Just as noted earlier that he embodied his Christian faith in an abstract figurative language, his colors can be understood as representations of the illumination of an invisible light. The light emitted by the colors was a gift of grace from heaven, distinguishing them from mere natural phenomena that can be interpreted rationally or intellectually. All his works testify to a world of light revealed in color. It is this unquenchable light that gives his works their remarkable magical character.

On the one hand, he perceived flat painting as a kind of illusionistic world, a relentless pursuit of transplanting the third dimension onto a two-dimensional plane. However, the third dimension created as such must still be self-contained in the second dimension. However, in his Nouago work, the shadowy forms of the objects remain in the space like the real thing. When he said, “Let us make shadows like those objects and creatures”, he meant a return and recovery from illusion to reality. The life he so desperately wanted to give to his canvas was now possible, and it was realized by becoming real with shadows. The Christian interpretation of this is that a being who did not know the truth became a new being through the “tearing” and “joining” of Christ.

There is light and hope in his oeuvre. The message of life overcoming death flashes in his works. The surprise and reversal of the unexpected is what drives his work, and it is what drives his world of art.

His work is profoundly meaningful, but it also offers the added pleasure of a dense textural relationship created by the netting of the canvas and the sculptural pleasure created by the merging of multiple fabrics. But it did not come by itself. Nouage is a painstakingly laborious process of tearing, twisting, and tying the canvas. There must have been a reason why he chose this method when there was an easier way. Without the pleasure of the process and the meaning it brings, it would be hard to imagine his laborious, hand-bruising effort.

“THE GALLERY”, which organized this exhibition of Shin’s work, is ready to open. We live in an imaginative symbolic world surrounded by “images”, “music” and “stories”. Our consciousness is shaped by these cultural elements, and it is hard to think of a way out of it. Perhaps we spend more and more time exposed to cultural forces and are even swayed by them.

So it is no wonder that even the cultural and artistic realm is subject to Christ's redemption, as we “take captive every thought to make it obedient to Christ”(2 Corinthians 10:5). It is our duty and task to share the vision of “a good life” and “a good society” by encouraging and flourishing the finest art. I would like to end this article by congratulating THE GALLERY on its opening with the expectation that it will serve as an “art platform” that cultivates an excellent culture.


SEO SEONG ROK

(Honorary Professor, Andong National University)

 

Selected Works

Introduction

누아주(Nouage)의 창시자, 신성희 – 부활의 회화  2023.06.22-2023.08.31

        

더 갤러리 개관기념전은 기존 회화의 관념에서 벗어나 회화적 혁신과 차별성을 보여주는 누아주(Nouage)의 창시자, 신성희 (1948 ~ 2009) 작가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와 정신을 소개하는  “신성희 – 부활의 회화”를 기획하게 되었다.


신성희 작가는 프랑스 파리에서 왕성한 작업으로 전 세계 화단을 놀라게 한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지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내며 세계 최초로 “누아주”라는 장르를 개척하였으며, 각 시대에 따라 콜라주, 박음, 엮기와 같은 테크닉의 변천 과정을 관통하고 있다. 


평면 캔퍼스에 만들어 낸 공간 속에 작가의 숨결을 불어넣어 회화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것처럼 이번 전시를 통하여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창조성 그리고 그 안에서 상상, 그 이상을 꿈꾸고 이루어냈던 작가의 예술성을 만나 보기 바란다.


k-art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을 더 갤러리는 누구나 좋은 작품들을 쉽게 접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미술을 대표하는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예술 생태계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 갈 것이며, 문화 예술의 가치를 미술 애호가들과 함께 공유하는 전시 프로그램들을 펼쳐 나갈 것이다.


이번 전시에 귀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해 주신 정이녹 여사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작품에 생명력을 더해 나갔던 작가의 열정이 부활의 기쁨처럼 활짝 피어나 더 갤러리를 찾아주신 미술 애호가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힘과 열정들로 가득 채워지시길  바란다.



2023. 6. 22




Shin Sung-Hy, the Founder of Nouage – Painting of Rebirth 

        

THE GALLERY’s exhibition to celebrate its opening titled Shin Sung-Hy – Painting of Rebirth was curated to introduce the unique compositional language and spirit of the late Shin Sung-Hy(1948 ~ 2009), the founder of Nouage, which demonstrates painterly innovation and differentiation from conventional notions of painting.


Shin created a unique and intelligent body of work that has stunned the international art scene with his flourishing work in Paris, France, pioneering the genre of “Nouage” for the first time in the world. His oeuvre penetrates a trajectory of transformation of techniques such as collage, stitching and weaving throughout each age.


This exhibition will introduce the new possibilities and creativity of painting and the artistry of Shin who dreamed beyond and fulfilled his imagination as he breathed life into his paintings by creating a space on a flat canvas.


THE GALLERY eager to inspire the K-art scene will create opportunities for everyone to easily access excellent pieces of artworks, and build a stronger art ecosystem with works by iconic and talented artists. I will also carry out exhibition programs that share the value of culture and art with art afficionados. 

I would like to express my deepest gratitude to Madam Inock Jeang, the wife of Shin Sung-Hy for offering his valuable works for this exhibition.


I hope that the passion of Shin Sung-Hy who brought vitality to his work could bloom like the joy of rebirth to empower and delight all the visitors to THE GALLERY.



June 22, 2023



평론의 글 - 빛과 부활의 시그널, 신성희의 ‘누아주’ 회화


“색채의 대가! 화면의 연주자! 힘차고도 명상적이며 열정적이면서 주의 깊고 다이나믹 하면서도 세심하고 조직적이면서도 직관적인 그는 작렬하는 색상, 강한 색상으로 탐색하며 질감으로 밀도 있게 쌓이면서 허공을 엮는다.”(Gilbert Lascault)

한 화가가 자신의 언어를 갖추는 데 평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신성희(1948-2009)는 2천 년대까지 평면에 대한 문제 의식을 품고 작업을 해오다 그 심화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프랑스의 평론가 질베르 라스코가 전성기의 작품을 보고 환호를 보낸 것은 그에 대한 화답이리라. 금욕적인 스타일이 대세이던 국내 화단에서도 그의 작품은 파격 자체였으나, 그의 회화 스타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움츠려 들기보다는 크리센도처럼 더 우렁차게 화면을 수놓았다.

이러한 성격은 채색된 판지를 찢어서 붙인 콜라쥬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색채로 직조 된 화면은 질료가 아니라 빛으로 치환된 매개물이란 점에 전문가들은 주목하였다. 오광수는 “현란한 색채의 향연은 계시 적인 빛의 홍수”와 같은 인상을 준다면서 “빛으로의 환원은 물질로서의 색채를 정신적인 계시의 체험”(1985)으로 전이된다고 하였고, 고(故) 이 일은 “허황된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모두 삶에 대한 뜨거운 갈망의 세계”(1988)를 표상하고 있다고 하였다.

콜라쥬 작업 이후에 나온 ‘누아주’(nouage)는 그의 예술이 절정에 달했을 때 등장하였다. ‘누아주’란 ‘엮다’, ‘잇다’란 뜻을 지닌 ‘누에’(nouer)에서 비롯된 프랑스어로 신성희의 작품을 일컬을 때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다. 마리 뷜또는 작가를 “붓과 가위의 특이한 리듬으로 장단을 맞추는 현대의 기사(騎士)”라고 불렀는데 바로 누아주 작업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누아주’ 연작은 천에다 각종 색을 입힌 다음 페인팅 한 천을 찢고 그것을 그물망처럼 화면에 엮어가는 과정을 거치는데 화면 전체를 이음으로 채우기도 하고 일부는 빈 공간으로 남겨두기도 하며 방사형으로 시각적 진동을 퍼지게 하는 공간 구성을 취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눈 여겨 볼 부분은 찢어진 천을 ‘엮거나 잇는’ 대목이다.

 

“나의 작업들은 찢어지기 위해 그려진다. 그리고 찢는다는 것은 이 시대의 예술에 대한 질문이며 그것이 접히고 묶여지는 것은 곧 나의 답변이다. -- 묶여진다는 것은 결합이다. 너와 나, 물질과 정신, 긍정과 부정, 변증의 대립을 통합하는 시각적 언어이다.”(2001)

 

작가는 천을 찢고 묶는 행위를 ‘대립을 통합하는 상징’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왜 작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실험’이라는 관용어를 놓아두고 철학적인 용어를 동원했을까. 이것은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가 언급 했듯이 다른 사람들이 그저 소음을 들을 뿐인 곳에서 어떤 사람은 음악을 듣는 것과 유사하다. 그는 ‘누아주’가 더 큰 의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잘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아주의 전형적인 작품 <공간별곡>은 ‘찢음’과 ‘이음’에 의해 완성되었다. 여기서 ‘찢음’은 단순한 천을 찢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속에 맥이 닿아있다. ‘찢음’은 세상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세상의 방법은 채우고 쌓고 과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찢음’은 버리고 낮추며 순종하는 의미에 가깝다. 예수님의 죽음은 세상의 본 모습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왕국의 속성도 드러냈다. 예수님의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희생을 받아들인 까닭에 우리를 옭아매던 죽음의 덫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이 단계는 ‘이음’으로 연결되는데 만일 ‘찢음’만 있고 ‘이음’이 없었다면 죽음만 있고 부활은 없는 상태와 같았으리라. 부활은 하나님이 죄와 사망을 멸하시고 자신의 창조세계를 그리스도로 인해 회복하실 것을 예고한다. 이는 인간이 망가뜨린 상한 세계가 하나님이 지으신 선한 창조세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소망을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이처럼 우리가 그의 작품이 지닌 의미를 찾아내려면 그의 작품 모자이크에 자리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심오한 패턴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대상을 꿰뚫어볼 수 있는 ‘믿음이라는 안경’이 필요할 것이다.

그의 화면에는 유난히 많은 색깔들이 기용된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높은 순도의 색상과 눈부신 효과는 화면 가득히 채워진 페인트된 천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작가는 이렇게 찬란한 색깔을 사용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가 색깔을 선호하게 된 것은 ‘형이상학적 빛’과 연결되어 있다. 넓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밝고 화사한 색채를 좋아했던 인상파화가들의 밝음 또한 이 빛과 상관이 없다. 앞에서 그가 기독교신앙을 추상적인 조형언어로 구체화시켰다고 했듯이 그의 색깔 또한 보이지 않는 빛의 조명을 형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색채가 내뿜는 빛은 하늘로부터 받은 은총의 선물이었다. 그것은 이성 혹은 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단순한 자연현상과 구별되며 그의 모든 작품이 색으로 계시된 빛의 세계를 증언하고 있다. 이 꺼질 줄 모르는 빛이 그의 작품에 놀라운 마술적 성격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으로 그에게 평면 회화는 일종의 일루전(幻影)의 세계, 그러니까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을 이식 시키는 부단한 추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3차원은 여전히 2차원에 자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누아주 작품에서는 실물처럼 그림자의 형체를 갖고 공간속에 건재하다. 작가가 “우리도 저 사물들과 생명체처럼 그림자를 만들자”고 말한 것은 일루전에서 실체로의 귀환이요 회복을 의미한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캔버스에 생명을 주는 일이 가능해졌으며 그 일은 그림자를 동반한 실재물이 됨으로써 실현되었다. 이것을 기독교 적으로 해석하면 진리를 알지 못하던 존재가 그리스도의 ‘찢음’과 ‘이음’을 통해 새 존재가 되었음을 말한다.

그의 작품에는 빛이 있고 소망이 있다. 죽음을 이기고 나온 생명의 메시지가 작품 안에 번뜩인다. 예기치 못한 사실을 만났을 때의 놀라움과 반전, 이것이 그의 작업에 큰 원동력이 되어 작품 세계를 견인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지만 화면을 그물망처럼 엮어가면서 만들어내는 조밀한 짜임 관계와 여러 천들이 합쳐지면서 생성되는 조형적인 즐거움을 덤으로 선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저절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누아주는 캔버스를 찢어서 꼬고 묶는 고난이도의 작업 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이 수법을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작업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 그리고 그것을 통한 의미의 획득이 없었다면 손에 피멍이 들 정도로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수고를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금번 신성희의 작품전을 기획한 ‘더 갤러리’가 개관의 준비를 마치고 막을 올린다. 우리는 ‘이미지’, ‘음악’, ‘이야기’에 둘러싸인 상상력이 동원되는 상징적 세계(imaginative symbolic world)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의식 형성은 이런 문화적 요소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는 일은 생각하기 힘들다. 어쩌면 우리는 문화적 위세에 점점 많은 시간을 노출하고 거기에 휘둘리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고후 10:5) 하듯이 문화적, 예술적 영역까지도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양질의 예술을 권장하고 번영시킴으로써 ‘좋은 삶’과 ‘좋은 사회’의 비전을 공유하는 일은 우리에게 맡겨진 의무이자 과제인 셈이다. 모쪼록 기대와 축복 속에 탄생한 ‘더 갤러리’가 훌륭한 문화를 배양하는 ‘예술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며, 이 글을 ‘더 갤러리’ 개관전을 축하하는 글로 가름하고자 한다.


서성록(안동대 명예교수)



Shin Sung Hy’s Painting of “Nouage”: Sigs of Light and Rebirth 


A master of color! A performer on canvas! Vigorous yet meditative, passionate yet careful, dynamic yet meticulous, organized yet intuitive, he navigates with blazing colors, and strong colors, and weaves through the void as he builds densely with texture.                  
                                                                                                                                                                                                                      - Gilbert Lascault

It is said that it takes a painter a lifetime to develop his own artistic language. Shin Sung Hy(1948-2009) had worked on his flat painting up until the 2000 with a critical mind, and came up with works as the result of hard work. French critic Gilbert Lascault applauding his work was a response to his oeuvre in his heydays. His work was a radical departure from the austere style of domestic painting back then, but his style of painting grew more like a crescendo than a diminution over time.

This is evident in his collage work, which is made of torn and glued colored cardboard. Experts in the field noted that the woven canvas of colors is not a material, but a medium that has been replaced by light. Oh Gwangsu said, “the dazzling feast of colors gives the impression of a revelatory flood of light” and “the reduction to light transfers color as a material into a spiritual experience of revelation”(1985), while the late Lee Il said that the work represents “not a world of hallow fantasies, but a world in which we all have an intense longing for life”(1988).

Nouage came around at the peaks of his career after his collage work. The word “nouage” is a French term derived from the word “nouer”, which means “to weave” or “to join”, and is often used to describe Shin’s work. Maributto called him, “a modern-day knight playing along with the unusual rhythm of brush and scissors”.

In the Nouage series, he paints various colors on cloth, then tears the painted cloth and weaves it onto the canvas like a net, sometimes filling the entire canvas with seams, sometimes leaving it empty, and sometimes creating a spatial composition that spreads visual vibrations radially, but it is the “weaving or joining” of the torn cloth that is noteworthy.

“My works are painted to be torn. To tear is to raise a question on art in this age, and to fold and bind is my answer. -- To be tied is to be joined. It is a visual language that unites the opposites of you and me, matter and spirit, affirmation and negation, and dialectic." (2001)

Shin considered the act of tearing and tying the cloth as a “symbol of unifying opposites”. Why did he abandon the idiom of “experimentation” often used by artists in favor of philosophical terms? As Michael Polanyi noted, some people hear music where others just hear noise. Shin understood that “Nouage” was entering a larger domain of meaning.

His quintessential work of Nouage titled Peinture Spatiale was completed by “tearing” and “joining”. Here, “tearing” does not refer to a simple tearing of the fabric. It refers to the love and redemption of Christ, who sacrificed himself for humanity. The tearing moves in the opposite direction of the world. The world’s way is to fill, pile, and show off. But for him, “tearing” is more about abandoning, humbling, and obeying. Jesus’ death revealed not only the world as it is, but also the attributes of God and his kingdom. Jesus' death was not a failure, but an acceptance of sacrifice so that we can be released from the death trap that holds us captive. This step leads to a “joining”, for if there was only “tearing” and no “joining”, there would be only death and no rebirth. Rebirth or resurrection foreshadows God’s destruction of sin and death, and the restoration of his creation in Christ. It can be interpreted as an expression of the hope that the broken world of humanity will be restored to its original state as the good creation of God. Thus, if we want to find a meaning of his work, we need to find the profound pattern of “Christ’s death and resurrection” in the mosaic of his work. To understand it properly, we will need the “glasses of faith” to see through the object.

His paintings feature an unusually large number of colors. The colors of high purity and the dazzling effect in his paintings come from the painted cloth that fills the canvas. The question arises as to why he used such brilliant colors. His preference for color is linked to a “metaphysical light”. It has nothing to do with the light coming in through the large windows. Nor does it have anything to do with the brightness of the Impressionists, who loved bright, vivid colors. Just as noted earlier that he embodied his Christian faith in an abstract figurative language, his colors can be understood as representations of the illumination of an invisible light. The light emitted by the colors was a gift of grace from heaven, distinguishing them from mere natural phenomena that can be interpreted rationally or intellectually. All his works testify to a world of light revealed in color. It is this unquenchable light that gives his works their remarkable magical character.

On the one hand, he perceived flat painting as a kind of illusionistic world, a relentless pursuit of transplanting the third dimension onto a two-dimensional plane. However, the third dimension created as such must still be self-contained in the second dimension. However, in his Nouago work, the shadowy forms of the objects remain in the space like the real thing. When he said, “Let us make shadows like those objects and creatures”, he meant a return and recovery from illusion to reality. The life he so desperately wanted to give to his canvas was now possible, and it was realized by becoming real with shadows. The Christian interpretation of this is that a being who did not know the truth became a new being through the “tearing” and “joining” of Christ.

There is light and hope in his oeuvre. The message of life overcoming death flashes in his works. The surprise and reversal of the unexpected is what drives his work, and it is what drives his world of art.

His work is profoundly meaningful, but it also offers the added pleasure of a dense textural relationship created by the netting of the canvas and the sculptural pleasure created by the merging of multiple fabrics. But it did not come by itself. Nouage is a painstakingly laborious process of tearing, twisting, and tying the canvas. There must have been a reason why he chose this method when there was an easier way. Without the pleasure of the process and the meaning it brings, it would be hard to imagine his laborious, hand-bruising effort.

“THE GALLERY”, which organized this exhibition of Shin’s work, is ready to open. We live in an imaginative symbolic world surrounded by “images”, “music” and “stories”. Our consciousness is shaped by these cultural elements, and it is hard to think of a way out of it. Perhaps we spend more and more time exposed to cultural forces and are even swayed by them.

So it is no wonder that even the cultural and artistic realm is subject to Christ's redemption, as we “take captive every thought to make it obedient to Christ”(2 Corinthians 10:5). It is our duty and task to share the vision of “a good life” and “a good society” by encouraging and flourishing the finest art. I would like to end this article by congratulating THE GALLERY on its opening with the expectation that it will serve as an “art platform” that cultivates an excellent culture.

SEO SEONG ROK (Honorary Professor, Andong Nation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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